Books

기술 서적과 다양한 서적을 읽고 느낀점을 정리합니다.
주로 기술 서적의 경우 Go와 gRPC, 쿠버네티스 위주로 읽으며, 일반 서적의 경우 정치/외교, 인문 등을 읽고 있습니다.
밀리의 서재를 이용하여서 주로 책을 읽고 있으며 소장하고 싶은 책이 있는 경우 종이책을 구매하여서 읽고 있습니다.

내가 책을 읽을 때 눈으로 읽는 것 같지만 가끔씩 나에게 의미가 있는 대목,
어쩌면 한 구절만이라도 우연히 발견하면 책은 나의 일부가 된다.

윌리엄 서머싯 몸(William Somerset Maugham)

기술 서적

Go

  • Go언어 웹프로그래밍 철저 입문
  • Tucker의 Go 언어 프로그래밍
    • Go언어를 처음으로 입문하면서 Tucker님의 유튜브 채널과 더불어서 함께 보면서 공부했던 책이다.
      Go의 기본적인 작동 원리와 자세한 설명, 코드가 서술되어 있어서 초보자도 공부하기 좋은 책이다.
      입문자에게 추천하고 싶은 서적!

gRPC

  • gRPC 시작에서 운영까지
    • 예제가 자세히 서술이 안 되어 있으며, gRPC의 경우에는 자주 업데이트가 되어서 서적에 기재 되어있는 명령어로 변환과 구동이 안 되는 경우도 있어서 검색을 많이 하게 되며 원서에서 제공하는 GitHub 예제를 많이 참고하게 됨.

Kubernetes

서적

법학

  • 에드윈 캐머런 - 헌법의 소원 / 완독
    • “헌법적 이론 앞에선 누구던지 평등하고 대통령도 피해 갈 순 없군아”라고 느꼈다.
      본 책을 읽으면서 궁금증이 생겼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주거의 의무가 강력하기 때문에 집에서 강제 퇴거 되더라도 정부에서 도와준다, 그런 경우에는 정부에서 지출하는 비용이 증가하게 되는데 과연 법이 국가의 제정을 변경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궁금증이 생겼다. 법을 만들 때 어떤 점들을 고려 해야하는지와 더불어 소수자를 포용하는 할 수 있는 사법체계(법안)을 생각 해야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여러 친구들을 사귀면서 내가 깨닫게 된 점은, 인종주의의 가장 큰 어리석음은 빈곤함을 양산한다는 것, 즉 터무니 없는 우월함의 고치 안에 사람들을 가두어 독특함, 다름, 다양성이라는 호화롭고 풍요로운 잔치 속에서 배를 곯게 한다는 것이다. 무지에서 비롯된 오해는 차치하더라도 말이다.

    • 아파라트헤이트는 ‘일치’에 가치를 두었다, 무엇보다도 이른바 인종적 순수함을 소중히 여겼고, 백인과 유럽 문화를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했다. 분리, 배제, 순종, <통행법>과 신체 수색, 그 모든 것의 체계(후에 헌법재판소장이 된 피우스 랑가는 진실과 화해 위원회에 제출한 글에서 이를 "모멸적 체계"라고 표현했다)는 단일 문화, 단일 인종, 단일한 피부색이 다른 어떠한 것보다 우월하고 가치 있다는 전체 위에 설립 되었다. 아파르트헤이트는 가장 부끄러운 부분인 인종차별에 초점을 두고 있었고, 또한 여성에 대한 차별, 특히 흑인 여성에 대한 차별이 가장 긴급한 문제였지만, 그 와중에도 아파르트헤이트의 억압이 다중적이었음을 우리가 주장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다름에 대한 보호는 인종차별 문제에 멈춰서도 안 되며, 성차별로 한정되어서도 안 된다. 가능한 한 많은 조건들을 포함해야 하는 것이다.

에세이

  • 너의 말이 좋아서 밑줄을 그었다
    • 나는 가끔 시적인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는데 형광 물고기 같은 별들이 몰려다니고 있었다. 저 별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내 생각의 결론은 대부분 아름다워서 슬프다. 가령 이렇다. 더 이상 우리가 사랑할 수 없게 된 말들은 죽어서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된다. 그러지 않고서야 저렇게 은은하게 떨리며 빛날 수가 없다. “시인 한 사람이 세상에 태어날 때마다 별자리에 특이한 움직임이 있다는 말은 사실인 것 같다.” 독일 시인 노발리스의 말이다. 시인들은 말수가 적으면서도 은유하는 말로 가장 많은 말을 하는 종족이다. 별은 무선 조종장치 같은 통해 사람의 말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 틀림 없다.

    • 그러므로 양치기나 파수꾼이나 등대지기는 별이 발명한 직업군이다. 그토록 외로울 수가 없고, 그토록 사람의 말이 그리울 수가 없다.나는 어쩌다 시인이 되어 고독에 세 들어 살고 있다. 정치가는 정치가 직업이고, 의사는 의료가 직업이고, 사업가는 사업이 직업인데 시인은 시가 직업이 아니다. 그래서 양치기나 파수꾼이나 등대지기 같은 직업들이 시인에 맞겠다는 생각이 든다. 별과 가까운 사람, 밤에도 깨어 있는 사람, 소중한 것들을 지키는 사람, 어찌 보면 특정 직업으로 시인을 한정할 필요가 없겠다. 회사원이나 환경미화원, 혹은 소방관이 밤늦게 일을 마치고 귀가하다가 별을 올려다보았다면 잠시 시인이 된 것이다. 별은 그들 가슴에 너라는 낱말 몇 개를 모스부호처럼 새겨 넣었을 것이다.

인문

  • 유시민 - 어떻게 살 것인가 / 읽는 중
    • 유시민 선생님의 유명한 책인 어떻게 살 것인가는 사회초년생과 앞으로 살아갈 인생에 대해서 어떻게 살아갈지, 또 왜 살아 가야지는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담고 있는 서적이다. 앞으로 삶에 대해서 어떻게 무엇을 갈망하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궁금하거나 더 좋은 삶을 위한다면 꼭 읽어보길 바란다.
    • “‘진정한 프로’가 되는 것, 이것이 삶의 행복과 인생의 성공을 절반 결정한다. 그런 점에서 행복한 삶을 원한다면 일이 아니라 놀이를 앞자리에 두어야 한다. 일이 먼저가 아니다. 놀이가 먼저다.”

    • 인간은 태어난 바로 그 순간부터 숨을 한 번 들이마시고 내쉴 때마다 한 걸음씩 죽음을 향해 나아간다. 다 살면 그때 죽는 게 아니다. 살아 있는 모든 순간, 우리는 조금씩 죽어간다. 죽음은 단지 삶의 이면裏面일 뿐이다. 삶과 죽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동행하며 함께 완성된다. 쉰다섯 해를 산 나는 이미 쉰다섯 해 죽은 것이다. 어차피 죽을 것이기 때문에 삶은 허무하다고 말하지 말자. 그것은 틀린 말이다. 그 역逆이 옳다. 죽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삶은 아름다울 수 있다.

    • 죽음을 원해서가 아니다. 의미 있는 삶을 위해서다. 인생은 그런 것이다. 하루가 모여 인생이 된다. 인생 전체가 의미 있으려면 살아 있는 모든 순간들이 기쁨과 즐거움, 보람과 황홀감으로 충만해야 한다.

    • ‘왜 자살하지 않는가?’ 카뮈의 질문에 나는 대답한다. 가슴이 설레어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 있다. 이루어지기만 한다면 너무 좋아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뛰어오를 것 같은 일이 있다. 누군가 못 견디게 그리워지는 시간이 있다. 더 많은 것을 주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어 미안한 사람들이 있다. 설렘과 황홀, 그리움, 사랑의 느낌… 이런 것들이 살아 있음을 기쁘게 만든다. 나는 더 즐겁게 일하고, 더 열심히 놀고, 더 많이 더 깊게 사랑하고 싶다. 더 많은 사람들과 손잡고 더 아름다운 것을 더 많이 만들고 싶다. 미래의 어느날이나 피안彼岸의 세상에서가 아니라, ‘지금’ 바로 ‘여기’에서 그렇게 살고 싶다. 떠나는 것이야 서두를 필요가 없다. 더 일할 수도 더 놀 수도 누군가를 더 사랑할 수도 타인과 손잡을 수도 없게 되었을 때, 그때 조금 아쉬움을 남긴 채 떠나면 된다.책을 읽으면서 가장 생각나는 구절

    • 카뮈는 왜 자살하지 않을까? 마흔입곱 살에 자동차 사고로 세상을 떠난 그 순간까지 카뮈는 행동으로 대답했다. 그는 세상과 삶 그 자체가 부조리라고, 죽음이 예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살아 있는 사람은 모두 사형수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 연대는 일과 놀이를 함께하고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구현되지만 또한 그것을 넘어선다. 세금을 납부하고, 병역의무를 이행하고, 투표를 하고 정당을 만들고, 이웃을 돕고, 시위를 하고, 유기동물을 보살피고, 아프리카 어린이의 교육을 후원하고, 멸종 위기에 처한 동식물을 구하고, 온실가스 배출과 에너지 소비를 자제하는 행위들은 모두 사회에, 국가에, 인류에, 생명에, 지구 행성에 대한 귀속감을 느끼고 표현하는 일이다. 연대에 참여하는 것은 일. 놀이, 사랑과 함게 의미 있고 기쁜 삶을 구성하는 본질적 요소이다. 이것 없이는 삶을 완성할 수도 최고의 행복을 누릴 수도 없다고 나는 믿는다.

    • 그래서 주기적으로 삶에 대한 번민과 회의가 찾아드는 것이리라. 나는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을 하고 싶다. 물두 할 수 있는 놀이에 빠저들고 싶다. 더 뜨겁게 사랑하고 더 깊게 사랑받고 싶다. 그렇게 일하고 놀고 사랑하면서, 지금 여기에서의 행복을 누르고 싶다. 그래야 인생의 마지막 날에도 내 삶에 대해 황홀한 자부심을 느길 수 있을 것 같다.

    • 누군가 이렇게 물을지 모르겠다. “그래, 당신 자신을 위해 살고 싶은 마음을 알겠다. 그러면 당신은 구체적으로 무얼 하면서 어떻게 살고 싶은 건가?” 특별한 것은 없다. 무엇보다 먼저 내가 즐거운 일을 하고 싶다. 그 일이란, 배우고 깨닫고 다른 사람과 나누는 직업이다. 아내와 아이들, 어머니와 형제자매들, 삶과 세상에 대해 깉은 공감을 나눌 수 있는 적은 수의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다.

    • 그러나 가장 무거웠던 것은 직업정치인이라는 객관적으로 규정되는 나의 ‘정체성’이었다. 나는 현실 정치의 맥락에 포획당한 사람이었다. 나의 모든 행위가 정치적 이해타산에 따른 것으로 규정하고 해석되는 한 떳떳하고 기쁜 마음으로 사회적 연대에 참여하기는 어려웠다. 계속 이렇게 산다면 온전하게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없을 것 같다.

    • 젊은이들에게 죽음이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예기치 못한 사고나 급성 질병에 걸려 갑자기 죽는 불운이 자신을 덮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삶이 유한하다는 것은 알지만 아직은 살날이 무한정 남아 있는 것만 같다. 사실 청년들에게 시간은 아직 ‘희소한 자원’이 아니다. 조금쯤은 낭비해도 괜찮다. 방황과 시행착오를 겪어도 될 만큼의 여우가 있다. 이것을 가리켜 ‘청춘의 특권’이라고 한다. 청년들은 죽음을 일반적이고 추상적ㅇ니 문제로 취급한다. 아직은 자기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임박한 문제가 아니라고 해서 내팽개쳐두어도 좋은 것은 아니다. 원하는 인생을 스스로 설계하고 옳다고 믿는 방식이로 살아가려면 휼륭한 삶, 품격 있는 인생이 어떤 것인지 나름의 견해를 세워야 한다. 그러려면 삶과 함게 죽음도 알아야 한다. 죽음을 모르거나 오해하면 삶을 망칠 수 있다.

    • 죽음은 단순히 삶의 끝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죽음은 삶의 완성이다. 소설도, 영화도, 연극도 모두 마지막이 있다. 마지막 장면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스토리가 크게 달라진다. 어떤 죽음을 준비하느냐에 따라 삶의 내용과 의미, 품격이 달라진다. 남아 있는 삶의 시간이 길수록 죽음에 대한 생각은 더 큰 가치가 있다. 아직 젊은 사람일수록 더 깊이 있게 죽음의 의미를 사유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주기적으로 일어나느 리더십 세대교체는 사회적 정치적 현상이지만 그 배후에는 생물학적 필연성이 놓여 있다. 조용하고 순조로운 교체든 시끄럽고 폭력적인 변화든 어쨌든 세대교체는 반드시 일어난다.

    • 나이가 너무 많이 들면 남의 삶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일과 자리는 피하는 게 현명하다. 대통령이 되는 것은 물론이요, 국회의원이나 장관, 기업의 최고 경영자도 사양하는 게 좋다. 좋은 일 하자고 나섰다가 외려 큰 민폐를 끼칠지 모른다. 잘못하면 나라가 흔들리고, 국민의 생활이 꼬이고, 노동자들이 거리에 나앉고, 사람이 죽고, 강과 바다 뭇 생명의 숨이 막히게 된다. 나는 이명박 대통령 시대에 대한민국이 겪었던 사회적 비극도 어느 정도 그런 면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 삶은 좋다. 죽음은 좋지 않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모든 사람에게 언제나 삶이 죽음보다 좋은 건 아니다. 삶이 더 견디기 힘들어서, 또는 계속해서 살아야 할 의미를 찾을 수 없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숱하게 많다. 그럴 때 흔히들 이렇게 말한다. “죽을 용기가 있다면 그걸로 살아볼 일이지!” 그러나 자살을 용기로만 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삶도 용기만 있다고 해서 마냥 잘 살아지는 것이 아니다. 사는데도 죽는 데도 다른 것이 있어야 한다. 삶의 그리고 죽음의 의미에 대한 확신이다. 그것이 없으면 삶도 죽음도 주체적 선택일 수 없다. 삶은 습관이고 죽음은 패배일 뿐이다.

    • 죽어버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평생 한 번도 해보지 않고 사는 사람은 많지 안핟. 대한민국 국민 여섯 가운데 하나가 1년에 한 번쯤은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60대는 넷 중 하나, 70세가 넘은 노인들은 셋 중 하나가 그렇다. 생각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자살을 생각한 사람의 다섯 가운데 하나는 실제로 자살을 시도한다.

    • 자살은 인간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철학적 실존적 선택이다. 특별히 못나서 자살을 생각 하는 게 아니다.
      청소년의 자살 충동은 대부분 성적과 진학 문제로 인한 열등감과 번민에서 비롯된다. 인생을 잘 살려면 평생 공부해야 한다. 공부는 살마에 따라서 즐거운 놀이가 될 수도 있고, 하고 싶은 직업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많은 아이들이 공부 때문에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부모가 보는 앞에서 아파트 창을 열고 뛰어내린다. 극복할 수 있는 시련과 고통, 스트레스는 해롭지 않다. 사람을 단련한다. 그러나 의미를 이해하기 어렵고 도저히 이겨낼 수 없다고 느끼게 만드는 시련은 아이들을 죽인다. 세상이, 학교가, 부모가, 국가가 아이들을 학대해 죽이고 있는 것이다.

    • 20대부터 50대까지 삶의 중심 무대에 선 청장년들에게는 경제적 실패가 자살 충동의 진앙震央이 된다. 가난이 그저 불편한 문제일 뿐이라는 말은 진실이 아니다. 가난은 그저 돈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실직, 고금리 사채, 일하고 또 일해도 벗어나지 못하는 가난, 사업 실패… 이런 것들은 때로 마지막 자존감까지 무너뜨린다. 삶을 욕되게 느끼도록 만든다. 동물은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하면 최후까지 버티다 굶어 죽는다. 그러나 사람은 최소한의 이간적 존엄조차 지킬 수 없을 때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한다.

    • 나는 스무두 살 겨울에 제법 심한 우울증을 앟았던 것 같다. 좌절감과 죄책감, 절망이 낳은 병이었을 것이다. 그때 나는 우울증이라는 병이 있는지도 몰랐다. 우울증은 감기와 비슷하다. 누구에나 찾아들 수 있고 저절로 낫기도 하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병증이 깊어져 죽음을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우울증은 감기와 달리 열이나 통증이 없다. 그래서 병에 걸린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근자에 나는 다시 우을증의 방문을 받은 게 아닌지 의문하면서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데 많은 시간을 썼다.

    • 세상도 인생도 다 굴곡이 있음을 우리는 안다. 평화로운 번영의 시대가 있는가 하면 포연 자욱한 전쟁의 시대도 있다. 국민경제에도 호경기와 불경기가 있는 것처럼 개인의 삶에도 내리막과 오르막이 있다. 사업은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한다. 선거는 이기도 하고 지기도 한다. 사랑의 황홀함이 실연失戀의 쓰라림으로 변하기도 한다. 그것이 인생과 세상의 이치이다. ‘김은 오르막인 게야. 그래서 힘이 든 것이야. 이 시간을 견디고 나면 다시 앞이 보일 거야.’그렇게 내 자신을 위로한다.

    • 큰 시련과 고난을 당해도 씩씩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남들이 보기에는 그리 크지 않은 어려움 앞에서 주저앉는 사람이 있다. 아예 우울증에 걸리지 않거나 걸려도 수월하게 극복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끝내 무력감을 벗어던지지 못하고 자살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 모두 우울증을 부르는 사회적 개인적 생활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있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죽음에서 보듯, 강력한 사회적 스트레스는 심각한 우울증을 유발해 사람을 자살로 몰아간다. 성적 부진이나 실직과 같이 우울증을 부르는 심각한 부정적 생활 스트레스는 대부분 제도와 관습, 문화 등 사회적 원인이 있다. 여기에 가정불화나 실연 같은 개인적 문제와 관련된 스트레스가 겹치면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다.

    • 내 나름의 ‘비법’이 있기는 있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거리감’이다. 세상에 대해서, 타인에 대해서,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그리고 내 자신에 대해서도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것이다. 나는 좋은 세상을 원하지만 그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세상을 저주하지는 않는다. 좋은 사람들을 사랑하지만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사랑을 믿지는 않는다. 내 생각이 옳다고 확신하는 경우에도 모두가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내가 하는 일들은 의미가 있다고 믿지만 그건 어디가지나 내 생각일 뿐임을 인정한다. 삶이 사랑과 환회와 성취감으로 채워져야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만 좌절과 슬픔, 상실과 이별 역시 피할 수 없는 삶의 한 요소임을 받아들인다.
      이렇게 하면 좌절감, 패배 의식, 상실감, 절망감, 외로움, 자기 비하와 같은 부정적 감정을 통제하고 조절하는 데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된다. 이것은 검증된 이론이 아니다. 남들도 효과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저 내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거리감을 가지고 대해야 하는 것이 삶만은 아닐 것이다. 죽음에 대해서도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 나는 어차피 죽는다. 관 뚜껑에 못이 박히기 전에는 사람을 평가할 수 없다고들 하짐나, 사람에 대한 평가는 관 뚜껑이 닫히고 한참 지난 뒤에도 달라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한들, 내가 이미 죽고 없는데 내게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 내 삶에 대한 평가는 살아 있는 동안만 내게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먼 훗날, 또는 긴 역사 속에서가 아니라 지금 바로 여기에서 내 스스로 의미를 느낄 수 있는 활동으로 내 삶을 채우는 것이 옳다. 그러니 내가 기쁨을 느낄 수 있는 방식으로 살자.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에 얾매이지 말자. 내 스스로 삶에 가치를 부여하는 꼭 그만큼만 내 죽음도 의미를 가질 것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며 산다.

    • 죽음은 무엇인가? 생물학적으로는 신비로울게 하나도 없다. 죽음은 곧 세포의 소멸이다. 단세포 생물인 아메바는 그 하나 뿐인 세포가 소멸하면 죽는 것이다. 그러나 다세포 생물은 몸을 구성하는 모든 세포의 기능이 전체적으로 멈추어야 죽는다. 인간은 약 100조 개의 세포를 가지 다세포 생물이다. 개별 세포가 죽어도 사람은 죽지 않는다. 팔이나 다리, 눈, 신장 등 신체 장기의 세포 일부가 통째로 사라지거나 죽어도 사람은 살 수 있다. 심장박동과 호흡, 두뇌활동이 정지되어 모든 세포들의 기능이 총제적으로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상태에 빠져야 사망한 것으로 인정한다.

    • 철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죽음은 고유한 정체성을 지닌 지성적 자아의 소멸을 의마한다. 일반적으로 철학적 죽음은 생물학적 죽음과 동시에 일어난다. 사고나 중증 질병으로 사망하는 경우, 둘을 분리하기 어렵다. 그런데 자아 정체성을 상실한 중증 치매 환자의 경우처럼 철학적으로는 사망하였지만, 생물학적 의하적 법률적으로는 살아 있는 사람도 있다. 철학적 죽음이 생물학적 죽음보다 선행先行한 것이다. 하지만 그 역逆은 성립하지 않는다. 뇌가 죽으면 지성적 자아가 기거할 수 있는 물리적 공간도 사라져버린다. 과학은 유몰론 위에 서 있다. 뇌와 의식의 관계를 보아도 물질이 의식에 선행先行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 공감과 열정은 느끼는 것이 심장이 아님을 우리는 안다. 태아를 초음파로 촬영하면 심장이 밝게 반짝인다. 심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뛸 뿐이다. 심장이 멈추어 서면 사람은 몇 분 안에 죽는다. 심장은 느끼거나 생각하지 못한다. 차가운 계산도 뜨거운 헌신도 모두 두뇌가 하는 일이다. 이성도 마음도 모두 거기에 있다. ‘찬 이성 더운 가슴’은 좋은 사람이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그러나 그 둘이 기거하는 공간은 다르지 않다. 단단히 두개골의 보호를 받는 1.4킬로그램의 회백색 세포 덩어리, 뇌가 바로 그것이다. 뇌가 죽으면 ‘찬 이성’과 ‘더운 가슴’이 함께 사라진다.

    • 사람의 뇌는 거대한 신경망 덩어리이다. 세포의 생태계, 또는 작은 우주라고 해도 무방하다. 뇌에는 뉴런이 수천억 개나 있다. 뉴런은 수많은 돌기를 만들어 다른 뉴런과 전기적 화학적 신호를 주고 받는다. 뉴런의 돌기들이 연결되는 구조를 시냅스synapse라고 한다. 하나의 뉴런이 많게는 1만 개의 시냅스 연결을 가진다. 시냅스를 통한 교신을 촉진하고 통제하는 데 작용하는 화학 물질은 지금까지 확인된 것만 해도 50가지가 넘는다. 뇌세포의 교체 주기는 인체의 모든 세포 중에 가장 길다. 부위에 따라서는 한 번 죽으면 다시 생기지 않는 것도 있다. 보고 듣고 느끼고 말하고 선택하고 결정하고 행동하는 인간의 모든 신체활동과 정신활동을 이 세포 덩어리가 관장한다. 인간 정신은 물질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물질인 뇌세포 활동의 산물이다. 물질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인간 정신의 본질을 이해하려면 유몰론에 기대지 않을 수 없다.

    • 인간의 죽음은 생물학적으로 모두 동일한 현상이다. 아인슈타인의 죽음과 무연고 노숙자의 죽음, 나의 죽음과 내가 미워하는 어떤 사람의 죽음은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러나 철학적 관점에서 보면 그렇지 않다. 죽음에는 근본적으로 다른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타인의 죽음이다. 다른 하나는 자기 자신의 죽음이다. 사람들은 이 둘에 대해 크게 다른 태도를 보인다. 타인의 죽음은 객관적 이상적으로 받아들이지만 자기 자신의 죽음에는 주관적 감정적으로 대응한다.

    • 인간은 단순한 세포 덩어리가 있다. 몸은 세포로 분해할 수 있지만 자아는 분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은 욕망과 충동에 끌리고 휘둘리면서도 아직 실현되지 않은 선善과 미美를 추구한다. 자아는 과거를 비판적으로 기억하면서 더 좋은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 그리고 그 자아는 반드시 죽어 소멸한다.

    • 언젠가는 죽어야 하고 잊혀질 수밖에 없는 것이 숙명이라면,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오직 하나이다. 살아 있는 동안, 지금 바로 여기에서, 나를 ‘나’로 인식하는 철학적 자아가 삶의 기쁨을 누르는 것이다. ‘나는 왜 자살하지 않는가? 무엇을 할 때 살아 있음을 황홀하게 느끼는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이 내가 진정 하고 싶은 것인가? 내 삶은 나에게 충분한 의미가 있는가?’ 스스로 이렇게 물어야 한다.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면 인생의 의미도 삶의 존엄도 없는 것이다.

인문

  • 유성호 -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 유성호 교수님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교실의 교수이며 그것이 알고 싶다 자문,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촉탁 법의관을 겸임하고 있습니다.
      본 책에서는 본질적인 인간의 죽음과 관련되어 다루는 책입니다, 개인의 죽음뿐만이 아닌 사회가 죽음에 미치는 영항과 죽음에 대한 인식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 “우리 목두 죽음을 비켜갈 순 없습니다.
      그게 바로 우리가 죽음을 마주보아야
      하는 이유죠.”

    • 그런데 지금은 그떄처럼 죽음의 순간을 가족이 모여 함께하기가 어렵다. 세상과의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할 시간도 없이 의료 행위의 한복판에서 죽음을 처분 당하는 것이 요즘 우리 사회 죽음의 대세가 아닌가 싶어 씁쓸한 심정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대세를 거슬러 이제 우리는 죽음을 당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맞이하는 쪽으로 생각해볼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 마지막으로 적극적 안락사는 아직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거부감을 표현하고 있기는 하다. 이 적극적 안락사는 다시 자발적인 경우와 비자벌적인 경우 두 종류가 있는데, 비자발적인 경우는 히틀러와 아우슈비츠를 생각나게 하는 반인륜적 행위라 할 수 있는 것으로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자발적인 경우는 어떻게 해야할 것이지에 대한 윤리적 문제를 분명 논의해야 할 것이다.

    • 안락사 또는 자비사, 어떤 표현을 쓰든 의도적 삶의 중단이라는 점에서는 똑같은 의미를 갖는데 문제는 과연 삶이 의도적으로 중단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지속적인 숙고가 필요한 문제다.

    • 법의학자로서 특별히 죽음과 인연 깊은 삶을 살고 있지만, 그 인연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더욱더 많이 생각하게 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이 아닌 삶이다. 깨달음을 추구하는 도인은 아니지만 죽음을 생각하고 살피고 돌아보는 과정에서 삶의 경건함과 소중함이 더욱더 절실해지는 것이다.

정치/외교/사회

  • 표창원 - 프로파일러 표창원의 사건 추적 / 완독(2020.12.22)
    • 범죄 심리학에 관심이 생겨 읽게 된 책, 묻지마 범죄가 왜 일어나는 몰랐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서 묻지마 범죄가 일어나는 문제점을 알게 되었음. 모든 사람들에게 범죄가 일어날 수 있고 왜 범죄가 일어나는지, 범죄자들의 심리는 어떤지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서 조금이라도 알 수 있게 되었음.
    • 하지만 이런 자백 중심의 수사 방식은 쉽고 빠르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다른 가능성이나 용의선을 포기하고 특정 용의자에게 수사가 집중되어 진범을 검거할 기회를 잃어버리고 허위 자백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성이 크게 내포되어 있다.
      따라서 이런 허위 자백에 위한 누명을 방지하기 위해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등 헌법과 형사소송법 및 범죄 수사 규칙 등에 규정된 피의자의 권리가 보장되고 지켜져야 한다.

  • 유시민 - 국가란 무엇인가 / 읽는 중
    • 유시민 선생님의 유명한 책 중 하나인 국가란 무엇인가는 국가는 왜 존재하는가와 더불어 국가의 책무를 다루는 책이다. 국가는 무엇을 하는지, 민주주의와 국가에 대한 철학과 이론 몇 가지를 큰 흐름으로 나누고 있다. 국가론에 관심이 있거나 민주주의에 대해서 궁금한 점이 있다면 한 번 읽어보길 권한다.
    • 국가는 사회 내부의 무질서와 범죄, 외부 침략의 위헙에서 인민의 생명과 안전,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정당하게 행사하는 “세속의 신”(Mortal God)이다. 국가는 합법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주체이며 국가의 폭력은 어떤한 경우에도 정당하다.

    • 풍요로운 사람들은 오늘의 상황에 불만을 느낄 기회가 없어서 보수적인 반면, 가난한 사람들은 내일을 생각할 여유가 없어서 보수적인 것이다.

자기계발

  • 일은 배신하지 않는다
    • 구글에서 인터랙티브 디벨로퍼로 일하고 계신 김종민님께서 쓰신 책, 구글에서는 어떻게 일하고 구글에서 인터랙티브 디벨로퍼가 무엇을 하는지 소개한다.
      자신이 일하면서 겪었던 일들에 대해서 소개한다. 개발자가 어떻게 성장하면 좋을지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추후 더 추가할 예정…
    • 내가 본격적으로 해외 취업을 준비한 계기는 한국에선 더는 성장할 수 없다고 느꼈을 때였다. 대부분 회사에선 열심히 일하던 작업자 시절을 지나 경력이 쌓이고 연봉이 올라가면 관리직으로 이동한다. 그 사림이 갖춘 전문성과 내공에 많은 돈을 투자하기보단, 높은 연봉의 관리자 한 명이 저렴한 연봉의 신입 인력 여러 명을 관리하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게 회사 측에선 더 이익이기 때문이다. 한 분야의 장점인 ‘장인 ‘이 되는 것이 꿈이었던 만큼 관리자로 승진하기보단 내 분야에서 통달한 전문가로 성장하고 싶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나이든 개발자와 디자이너가 있는 미국의 뉴스를 접할 때면 저런 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기타

  • 유시민의 항소이유서
    • 본 항소이유서(소송의 결과를 인정하지 못하고 상급법원에 항소하겠다는 이유를 설명하는 문서)는 서울대 민간인 감금 폭행 고문 사건의 연류된 유시민의 항소 이유서이며, 퇴고를 하지 않고 본인이 직접 작성한 항소 이유서임.
    •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1985년 5월 27일
      유 시 민
      서울형사지방법원 항소 제5부 재판장님 귀하

읽고 싶은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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